지역(우리 동네)원천스토리 - 풍남동 사람들 (작가 이지수)
풍남동 사람들 (작가 이지수) - 지역(우리 동네)원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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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엄마, 그 소식 들었는가?”
건넛마을 국밥집 아줌마가 방앗간 앞에 서 있는 동재엄마를 불렀다.
“아주머니, 무슨 소식이 있나요?”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한양에 바글바글 하데. 전주에도 왜놈말 쓰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니까. 시장에도 왜물건들이 들어와 아낙네들이 문전성시라네.”
국밥집 아줌마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게다가 철로 된 요상한 길을 낸다고 멀쩡한 승암산을 파헤치는데, 우리 쌀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려고 만든 거라던데.”
“아, 기찻길요? 부성도 부수고, 풍남문 빼고 남아있는 게 없더라고요. 바닷길이 열렸다더니 별 놈이 다 들어오고, 별 일이 다 생기네요. 이러다 이 동네도 왜놈세상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동재엄마는 동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으로 험한 세상이다. 네가 살 동네가 온전하려면 우리가 마을을 지켜야 하는데...어쩌면 좋니.’
동재 엄마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방앗간 건너에서 주완이와 상무가 동재를 불렀다.
“동재야! 딱지 치자. 이리 와.”
동재는 어머니 눈치를 살폈다.
“어머니, 저 친구들이랑 놀다 올게요.”
그때 검은 비단을 두르고 게다를 신은 일본인들이 방앗간 앞을 지나갔다.
“엇! 저 사람들은 조선 사람이 아닌데?”
동재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주완이가 나섰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우리나라 뺏으러 물 건너 왔대. 요즘 시장에 많이 들락거리는 저 사람들인가 봐.”
“많이도 왔네. 무슨 신발이 저렇게 생겼냐? 발가락 어지간히 아프겠다.”
친구들의 이야기에 관심 없다는 듯 상무가 말했다. 시장을 찾은 다른 아이들과 아낙들도 슬금슬금 쳐다보았다. 모두들 두 사내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려는데 조선말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저들이 새로운 물건을 가져오고 기차가 다니는 길도 만드니까, 나라 뺏으러 온 게 아니라 구하러 온 거라고 하던데... 장사도 잘 되는 거 같고 좋다고. 근데 난...”
주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무가 촐랑댔다.
“왜~시장이 북적북적하니까 좋기만 하다야.”
일본인들은 부성을 무너뜨리고 들어와서 시장 상권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조선인 가게를 야금야금 삼키고 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시장에 사람들이 많다고 좋아했다. 상무는 일본인들이 가는 쪽으로 동재와 주완이를 이끌었다.
“동재야, 주완아, 우리 저 사람들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보자.”
일본인들이 향한 곳은 일본인과 마을의 지주만 드나들 수 있다는 청사였다. 풍남동 일대의 땅을 두고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어이, 다이스케. 여기 땅을 모조리 사들여서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널리 알리자고.”
“돈밖에 모르는 조센징. 돈만 좀 얹어주면 좋다고 팔 거야.”
“이 동네를 갈아엎어야 조선의 기를 죽일 수 있다더군.”
동재와 친구들은 그들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무는 일본인들과 동재와 주완이를 번갈아 보며 소곤거렸다.
“난들 아냐. 근데 우리를 욕하는 거 같아서 괜히 기분이 안 좋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거 계속 듣고 있어봐야 뭐해. 가자.”
주완이의 말에 동재가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좀 더 있어보자.”
동재도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때 상무가 청사를 가리켰다.
“어? 동재네 할아버지다.”
하얀 모시적삼을 입은 할아버지가 청사에서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백발이 성성했지만 젊은이들 못지않게 성큼성큼 걷는 걸음과 우람한 기운이 금세 눈에 띄었다. 청사 입구에 서 있던 일본인 사내들이 할아버지를 보자 정중히 악수를 청했다.
“얘들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얼른!”
동재는 할아버지가 자기를 보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며 친구들을 잡아끌었다.
“더 있자고 할 땐 언제고.”
언제나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였지만 그때만큼은 할아버지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할아버지가 친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재를 발견했다.
“우리 동재 아니냐? 여기는 어쩐 일인고?”
할아버지는 동재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상무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일본인들을 가리켰다.
“할아버지,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지. 저기 바다 건너 일본에서 온 사람들인데, 이곳 풍남동을 말끔하게 해준다는구나.”
“네? 어떻게요?”
이번에는 주완이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내가 갖고 있는 땅에 신식 건물도 지어주고, 길도 넓혀서 다니기 편하게 바꿔 줄 거란다.”
“와, 그럼 여기도 한양처럼 되겠네요!”
신나게 말하는 상무와는 달리 주완이와 동재는 알 수 없다는 듯 서로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동재와 손자의 친구들이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이내 동재를 바라보았다.
“동재야, 너는 할아버지의 꿈이다. 우리 집안의 기둥이고! 내가 바라는 건 네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그것 딱 하나다. 알지? 하나밖에 없는 내 손자.”
동재는 방금 전까지 할아버지를 모른 척 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채셨을까 마음을 졸였다. 동네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할아버지가 동재 앞에서만큼은 허허할아버지가 되었다. 동재도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동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제각각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회의를 엽시다!”
“맞소! 사람들을 모아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소!”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들어와서 의견을 나눠봅시다.”
동재 아버지는 마당에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자, 여러분의 생각을 말해보시오.”
“풍남문 밖에 있던 일본인들이 점점 마을로 들어와 가게를 차지하고 있어요. 이제는 가게도 모자라 땅까지 사서 일본식 가옥을 짓는다고 합니다. 이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맞아요. 일본놈들이 우리 동네를 집어삼키게 할 수 없어요!”
“지주들이 일본한테 땅을 팔면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말짱 도루묵 아니오?”
그때, 동재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일본인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은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으나, 우리 마을을 지킬 방법은 있습니다.”
사람들은 동시에 동재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엇입니까?”
“아직 풍남문 동쪽으로는 일본인들이 팔을 못 뻗고 있으니 우리가 모조리 그쪽 땅을 사서 한옥을 짓는 건 어떻습니까?”
“우리에게 그 많은 땅을 살 수 있는 돈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그 땅을 사서 자네들에게 싼 값에 주겠네. 그럼 되겠나?”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동재 아버지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다만, 그 땅에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꼭 한옥을 지어야 하네.”
”왜 꼭 집을 지어야하오?“
“사람 사는 집은 쉽게 건들지 못할 테니, 이 땅에 일본식 가옥을 지으려는 그들에게 더더욱 우리의 한옥을 보여주어야 하네.”
“어험, 이게 다 무슨 소리냐!”
동재 할아버지가 방문을 벌컥 열며 소리쳤다.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집을 빠져나갔다.
“아버지도 보셨지 않습니까. 일본이 저러는 걸 우리라도 막아야 해요.”
“막긴 뭘 막느냐? 우리가 이렇게라도 먹고 사는 것이 다 일본 덕이다.”
“아버지가 말리셔도 저는 그 땅들을 사야겠습니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라도 제 손으로 한옥을 지어야겠어요.”
“어떻게 키운 집안인데, 네가 살림을 모두 거덜 낼 작정이구나! 어멈아, 네 생각은 어떠냐?”
부엌에서 듣고 있던 동재 어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아버님, 저도 동재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가 먹고살 수 있는 것은 일본 덕이 아니라 논과 밭을 함께 일궈준 마을 사람들 덕분이니까요.”
동재 어머니의 완강한 태도에 할아버지도 불같이 화를 내며 방문을 쾅 닫았다.
“아버지가 많은 돈을 주고 한옥을 짓는데, 그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싸게 주겠다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거예요?”
동재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래,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돈이 아니야. 그 돈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는 지가 정말 중요하단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기쁠 때나 슬플 때 언제나 함께 그것을 나누었어. 네가 태어나고 자라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지. 아버지는 그 감사함을 이렇게 보답하고 싶으신 거란다. 그게 이 나라 조선을 지킬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은 것이겠지.”
어머니는 미소 띤 얼굴로 동재에게 조용조용 얘기해주었다.
“한옥을 짓는 일이 어떻게 조선을 지키는 거예요?”
“일본은 우리 조선의 것을 빼앗으려 해. 풍남동 사람들처럼 서로의 것을 지켜주고 존중해주면 좋을 텐데.”
“오늘 청사 앞에서 일본 사람들이랑 함께 있는 할아버지를 보았어요. 할아버지는 제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분이신데 그 때만큼은 모른 척 하고 싶었어요.”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어른이시다.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언젠가는 알게 되실 거야.”
동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당의 소나무를 바라보았다. 동재가 태어날 때 아버지가 심은 소나무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단단하고 푸르게 보였다.
할아버지가 된 동재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기예보를 보았다.
“오늘 전주의 날씨는 맑겠습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는 하늘을 볼 수 있을 텐데요. 이런 날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 가는 것은 어떨까요?”
동재는 지팡이를 짚고 방에 있는 지안이를 불렀다.
“지안아, 우리 오목대에 가볼까?”
“네, 할아버지.”
동재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쏙 빼닮은 손녀 지안이를 데리고 오목대에 올랐다. 마치 밀려오는 푸른 파도처럼 멋스런 기와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 우리 마을이 정말 멋있어요! 저 한옥들을 할아버지가 지은 게 맞지요?”
동재는 흐뭇한 미소로 지안이를 바라보았다.
osg6355 | 조회 7456 | 2018-10-3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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