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우리 동네)원천스토리 - 꽃 피는 공단 (작가 박경희)
꽃 피는 공단 (작가 박경희) -지역(우리 동네)원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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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낡은 대문에 정겨운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떡 좀 드세요.”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떡 접시를 들고 대문 앞에 서있었다.
“아이고메, 뭘 이런 걸 다. 고마워요!”
할머니는 윤기 나는 떡을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할머니 곁에 서있던 나도 씩 웃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참이었는데.
나는 팔복동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단칸방에 산다고 해서 크게 불만은 없다. 옆집도, 앞집도, 뒷집도 우리집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동네에 짐을 한가득 실은 용달차가 많이 보인다.
뜨끈한 떡을 다 먹고나자 할머니는 마당의 감나무에 열린 잘 익은 감 몇 개를 따다 접시에 담았다.
“꼬민아, 아까 왔던 앞집 아주머니 기억나지? 떡 잘 먹었다고 하고 감 좀 갖다드려라.”
“네. 할머니, 다녀올게요.”
나는 감접시를 들고 앞집으로 갔다.
“계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대문을 열고 나온 건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였다. 난 속으로 날아갈 듯 기뻤다. 우리 동네엔 나랑 친구 할만한 또래가 없었는데. 드디어 친구가 생기는구나 싶어 마음이 두근거렸다.
“안녕! 나는 앞집에 사는 꼬민이야. 넌 누구니?”
“응. 나는 소녀야. 근데 왜?“
“아, 아니, 우리 할머니가 떡 맛있게 먹었다고 이거 갖다 주래. 우리 감나무에서 땄는데 되게 맛있어!”
나는 집 앞의 감나무를 가리켰다.
“우와 도시에도 감나무가 있구나.”
소녀는 탐스럽게 열린 감나무를 보고 신기해했다.
“응! 감 말고도 우리 동네에는 신기한 게 많아. 그거 아니? 여기는 눈만 뜨면 뭐가 생기고 또 생긴다!”
나는 자랑스럽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소녀야, 나랑 같이 팔복동 구경 갈래?”
“응, 구경시켜줘.”
소녀의 말에 나는 신이 나서 앞장섰다. 가장 먼저 우리 동네에서 쉽게 눈에 띄는 큰 공장으로 갔다.
“저기는 코카콜라공장이야. 코카콜라 아니? 되게 유명한 미국 음료수!”
“아니, 몰라. 근데 공장이 진짜 크다.”
소녀는 까치발을 하고 공장을 넘겨다 보았다.
“저쪽으로 가면 메리야스공장이 있어. BYC보이니? 저번에 우리 할머니가 저기서 메리야스를 싸게 뭉텅이로 집어오셨어. 이거 봐봐!”
나는 빨간 글씨의 BYC공장이 보이자마자 자랑스럽게 윗옷을 들췄다.
소녀는 금새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남사스럽게. 그런데 옷이 왜 그렇게 누리끼리하니?”
나는 내 메리야스를 보고 마치 벌레보듯 흠칫 놀랐다. 울그락불그락 내 귀가 뜨거워짐을 느낄 즈음에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소리가 들렸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빵!”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리더니 금새 우리 앞으로 기차가 거대한 연기를 뿜으며 지나갔다.
“이쪽으로 가면 기차가 다녀. 기차 실제로 본적 있니?”
“아니, 처음 봐. 근데 정말 신기하다. 기차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다니! 우리도 탈 수 있니?”
친구는 쌩 하고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신나서 물었다.
“아니, 화물만 싣는 기차래. 그래서 사람은 탈 수 없어. 대신 이 기차랑 저 공장들이 전주를 먹여 살린대!”
나는 공장과 사람들이 모여들며 날로 북적북적해지는 이 곳을 신나게 자랑했다.
기찻길을 나와서 길을 건넜는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우리는 냄새를 따라가 봤다. 종이를 만드는 공장의 굴뚝에서 연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의 색이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폐지와 화학약품이 섞여 불쾌한 냄새를 품고 있는 연기가 공장의 주변을 덮어버렸다.
“윽, 숨막혀!“
소녀가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는 그 곳을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왔다.
공장지대를 벗어나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자!”
사람들이 몰려든 곳에는 주민들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다들 불평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우리집이 쓰레기장이냐! 쓰레기매립지 물러가라! 물러가라!”
“아니 시방, 전주의 모든 똥을 왜 팔복동으로 싹 쓸어 모은단 말이여!”
“냄새나는 똥 공장 물러가라! 물러가라!”
우리는 이내 귀와 코에서 따가움을 느꼈다.
“우웩, 지독한 똥냄새,,,”
“웩, 완전 토하기 직전이야. 우리 빨리 집에나 가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와 어른들의 분노를 피해 얼른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터덜터덜, 우리는 어둑어둑해지는 길 위를 한참 걸었다.
저 멀리서 눈부시는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빵빵”
“조심해!”
나는 소리쳤고, 내 친구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피곤하고 나른하던 참에 소녀 옆으로 무섭게 지나친 화물차 덕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화물차만이 끊임없이 지나다녔다.
이곳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점점 날은 어두워졌고 우리들의 걸음도 빨라졌다.
드디어 저 멀리 은은하고 낮은 불빛이 보였다. 익숙한 이웃집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어르신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여기다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못 배운 사람이나 하는 행동을,,, 쯧쯧”
“뭣이여? 나 가진 거 없다고 그렇게 무시하는겨?”
“으,, 술 냄새. 적당히 좀 마셔요!”
“아, 다들 조용히 좀 하세요! 빨리 이 동네를 뜨던지 해야지.”
쓰레기문제로 싸우고 소음문제로 싸우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른들이 술을 마셔서인지 대화가 거칠었다. 난생 들어보지도 않은 이상한 단어들이 어른들의 입으로 오고 갔다. 부부싸움은 물론 이웃끼리도 서로 조용히 하라며 다툼의 소리만이 이 동네 안에서 돌고 돌았다. 나는 소녀에게 이 곳을 신나게 자랑한 게 부끄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우리집 앞에 텅 빈 용달차가 왔다. 여느 때와 달리 용달차가 썩 반갑지 않았다.
“꼬민아! 꼬민아!”
친구의 목소리에 나는 달려 나갔다.
“나 이사가. 엄마가 여기는 사람 살 곳이 아니래. 냄새나는 곳이어서 떠나야 한 대.”
갑자기 마음이 쿵 떨어질 듯 무거웠다.
“안 가면 안 돼?”
나는 울먹이며 물었다. 소녀는 내 유일한 친구인데 헤어져야 한다니.
“응. 이제 가봐야 해. 잘 있어. 너도 같이 떠나면 좋을 텐데.”
소녀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묻어났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뒤로도 사람들이 한 두 명씩 이 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빈 집은 점점 늘어만 갔다. 오래된 집의 빈틈 사이사이로 잡초만 무성히 자랐다. 찾아온 손님이라곤 기거나 날라 다니는 벌레들 뿐 이었다. 이젠 놀 친구도 없고 싸우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이 곳은 그저 공장이 돌아가는 소리와 담배연기 그리고 냄새나는 매연으로 가득 차올랐다.
“할머니, 저 여기서 살기 싫어요! 여기는 친구도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당장 이 동네를 떠나고 싶었다.
“꼬민아. 여기는 너희 엄마가 자란 곳이고 또 엄마가 널 낳아준 곳이잖아.”
할머니가 힘없이 말했다. 할머니는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할머니가 미웠다. 할머니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졌다.
콜록콜록 기침도 잦아졌다.
“아이쿠, 이게 뭐람? 시멘트잖아!”
“할머니, 괜찮아요?!”
기침을 하던 할머니의 코에서 시멘트덩어리가 나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시멘트공장이 있는데 그새 이곳의 공기가 심각하게 오염됐나보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가 이내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
할머니까지 떠나버리면 어쩌지.‘
모든 게 이 더러운 팔복동 때문이다.
“걱정마. 헐머니는 괜찮아. 꼬민아, 벌써 잘 시간이 넘었지? 어서 자자.”
할머니의 기운 없는 목소리에 자고 싶은데도 잠이 안 왔다. 어둠이 나를 짓누르는 것 마냥 밤이 되면 몸이 무거워졌다. 오늘따라 밤이 길었다. 처음으로 할머니 몰래 늦은 밤 밖에 나왔다. 구름이 달빛을 가렸다. 몸이 으스스해지는 것이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모르겠다.
예전과는 다르게 공장이 생겨난 뒤부터 밤하늘에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반짝여야 할 별들이 땅에 듬성듬성 박혀있다. 아마 저 곳이 공장지대 주변이겠지. 여기서 사는 것이 그닥 즐겁지가 않았다. 나는 왜 여기서 살까?
며칠 뒤 날씨가 화창해졌다. 그동안 비가 내려 꿉꿉했는데 날씨 하나로 기분이 좋아졌다. 화분에는 잔잔한 흙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엇? 할머니!! 새싹! 새싹이 자랐어요!”
조그마한 새싹을 조심조심 마당에 옮겨 심었다. 나의 떨림이 한없이 여린 새싹에 그대로 전해졌다. 예전에 할머니와 함께 토마토도 심고 옥수수도 심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곳에 머물렀던, 맛있게 감을 먹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이럴 때가 아니다. 무엇이든 부지런히 심어 이 곳에 식물의 향기를 채우고 푸른 생명력을 이웃과 나누어야겠다.
나는 동네의 거친 벽 위로 손을 힘껏 뻗어 나름대로 열심히 적은 종이를 붙였다.
팔복동에 사는 어르신분들께. 안녕하세요. 꼬민이에요. 며칠 전 우리집 화분에서 새싹이 자랐어요. 마당에 옮겨 심었더니 향긋한 풀냄새를 풍기며 쑥쑥 자라고 있어요. 이젠 담배냄새 대신 풀냄새가 제 아침을 반겨주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 중략 - 우리 할머니가 매일 기침을 하세요. 꽃과 나무를 심어서 공기를 맑게 하고 싶어요. 함께 도와주세요! |
어른들은 집을 나서 동네를 걸을 때 마다 내 삐뚤삐뚤한 손글씨가 적힌 종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이고 꼬민이 기특하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우리 집에 토마토랑 고구마 있는데 여기 심으면 좋겠네.”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나와서 씨도 뿌리고 나무를 심었다. 다음 해 봄, 씨앗에 싹이 나고 꽃이 피니 동네가 한결 환해졌다. 먼지와 매연으로 가득했던 공간은 향기로움과 싱그러움으로 가득했다. 공장 옆에도 철길을 따라 하얀 이팝꽃이 폈다. 할머니가 이 모습을 보고 활짝 웃었다.
osg6355 | 조회 7402 | 2018-10-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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