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우리 동네)원천스토리 - 게으른 아들의 팥죽 분투기 (작가 김경숙)
게으른 아들의 팥죽 분투기 (작가 김경숙) - 지역(우리 동네)원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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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엄니 엉덩이 익겄시오, 왜케 아궁이에 불을 뗀대요?”
어머니는 게으른 아들을 방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아궁이에 장작을 집어넣었어요.
“니가 이기나 엄니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것이지 시방. 이러고도 안 나오나 한번 히보자”
하지만 아들은 이불을 높이 쌓아 올리고 위로 올라가 누웠어요.
“엄니, 지가 노는 것처럼 보여요? 아니에요, 지는 지금 생각중이랑게요.”
“아이고, 내 팔자야. 언능 논에 나가 보란게.”
“알겄시오, 이것만 먹고 갈랑게요.”
아들은 누룽지를 들고 나무 그늘 평상에 누웠어요. 볼록해진 배를 득득 긁으며, 누룽지를 야금야금 먹으니 잠이 솔솔 오지 뭐예요.
어머니는 게으른 아들 때문에 답답해서 얼른 톱을 가져와 쓱싹쓱싹 나뭇가지를 베어 나무 그늘을 없애버렸어요. 그러자 아들은 또르르 굴러 다른 나무그늘 밑으로 굴러갔어요. 어머니는 또 나뭇가지를 잘라 냈어요. 이번에도 아들은 또 또르르 굴러갔지요.
어머니는 보다 못해 한숨을 푹 쉬고는 혼자 논으로 갔어요.
‘아이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놈이 장가가서 사람구실 하고 잘 살아야 할 텐데, 어찌할꼬.’
어머니 걱정은 태산처럼 높아만 갔어요.
‘저건 필시 병일것여, 게으름병, 병이고 말고. 아녀, 병이면 약으로 고치기나 하지, 귀신이 붙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지, 필시 우리 아들한테 게으른 귀신이 붙었고만.’
어머니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아들은 눈을 끔벅끔벅, 코를 벌렁벌렁, 입을 뻐금거렸어요. 어머니는 게으른 귀신을 쫒아내려고 아들의 등을 힘껏 때렸어요.
“아이고 엄니, 아들 죽어요.”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었어요.
그 뒤로도 어머니는 아들에게 붙은 게으른 귀신을 쫒아내려고 방에 마늘을 주렁주렁 걸어놓고 부처님, 산신령님께 밤마다 빌어도 봤어요,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논에 나가 일을 하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넘어져버리고 말았어요,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힘 없이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지요. 그도 그럴 것이 혼자 논일을 다하려니 힘이 빠져 서있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어머니는 이런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워 눈물이 났어요.
그때 한 처자가 지나가다 어머니의 우는 소리를 들었어요.
“아주머니, 무슨 일이세요?”
“이 넓은 논을 혼자 다 매려니 너무 힘든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게으른 귀신이 붙었는지 도통 일을 안한다우.”
“게으른 귀신요?”
“그 귀신을 떼어내려고 별 수를 다 써 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우.“
어머니의 말을 한참 듣고 있던 처자는 들고 있던 보자기를 풀어 팥죽 한 그릇을 꺼냈어요.
“아주머니, 팥이 귀신을 쫒는다는 말이 있어요. 이것을 아들에게 한번 먹여보세요.”
“아니, 웬 팥죽이오?”
“저는 요 아랫마을에 사는데 올해 팥이 하도 좋아 죽 좀 쑤어서 혼자 사시는 친척집에 갖다 주러 가는 길인데, 아주머니 걱정이 먼저인 것 같으니 가져가서 아들에게 주세요.”
“아유, 고맙기도 하지, 고마워요. 처자”
어머니가 처자에게 고맙다고 연거푸 인사를 하자 처자는 괜찮다며 자리를 떴어요.
‘마음씨도 곱고, 걸음걸이도 참 바지런하게도 걷네 그려.’
어머니는 처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어요. 그리고 그 길로 아들에게 가서 얼른 팥죽을 주었지요.
“엄니, 정말 맛있어요. 한 그릇 더 주세요, 둘이 먹다 둘이 죽겄시오.”
“저 물동이에 물을 길어 오면 주마.”
”싫어요. 팥죽이나 더 주세요. 어서요. 쩝쩝.”
어머니는 자식에게 이일 저일 시키며 혹시 게으른 귀신이 떨어지나 보았지요. 하지만 아들은 여전히 게을렀고 팥죽만 내놓으라고 성화였어요.
“팥죽이 그렇게 맛있냐?
“네, 정말 맛있어요, 또 없시오?”
“에라, 이놈아 팥죽은 너한테 붙은 게으른 귀신을 쫒아내려고 준 것인디......”
어머니는 팥죽도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 실망했어요.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어머니는 이제 늙어서 농사지을 힘이 더더욱 없었어요.
“얘야, 이 에미가 죽기 전에 어서 장가가야 되지 않겄냐? 엄니 소원이니 어서 처자를 알아보거라.”
“에잇, 장가는 가서 뭐에 쓴다요, 귀찮게 시리, 싫어요!”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채 손사래 쳤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장가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그런데 아들의 슬픔도 잠시 머릿속에는 어머니가 갖다 준 팥죽만 자꾸 떠올랐어요.
‘아, 팥죽 한 그릇만 먹으면 살겠구먼, 엄니는 대체 어디서 그 팥죽을 가져 왔을까?’
자리에 누운 아들은 천장에 팥죽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였어요. 뒷산 소쩍새는 “팥죽”, “팥죽”하며 울지 뭐예요. 아들은 팥죽 생각이 간절했어요.
한참을 고민하다 마을에 소문을 내기로 했어요.
“팥죽을 맛있게 쑤어주는 사람에게 논 한마지기를 주겄시오.”
소문은 널리널리 퍼져 나갔고, 아들네 집은 논 한마지기를 가지려고 팥죽을 들고 온 사람들과, 대체 논 한마지기와 팥죽을 바꾸는 바보가 누군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했어요.
“자, 줄을 서시오, 어디 첫 번째 아줌니것부터 맛 좀 보것시오”
“앗따, 이 팥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라도에서 나는 가장 좋은 팥과 가장 좋은 물로 만들어 입에서 살살 녹는당께.”
맛있다며 너스레 떠는 뚱뚱한 아주머니의 말에 아들은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어요.
“캑캑, 살살 녹기는커녕 꺼끌거려서 목에 걸리는구만요. 이 맛이 아니오, 다음요”
“그랑게, 이 팥죽 먹고 놀라 자빠지지나 말어. 자 일단 먹어봐”
아들은 기대하며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먹어 봤어요.
“웩, 아줌니 맛없어서 놀라 자빠지겄네요, 이 맛도 아니오.”
해가 떨어지도록 줄은 이어졌지만 어머니가 주신 팥죽 맛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코처럼 쭈우욱 늘어지는 죽, 떡 된죽, 싱거운 죽, 짠 죽, 텁텁한 죽, 맹탕 죽. 어느 것도 어머니가 준 팥죽 맛이 아니었어요. 아들은 이제 그 팥죽 맛은 못 먹어보겠구나 싶어 단념하려고 했어요.
그때 어떤 처자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팥죽을 내밀었어요.
“잠깐만요, 제 것 좀 한번 드셔보세요,”
“지금까지 하도 이상한 팥죽만 먹어서 더는 못 먹겄시오. 그만 가시오.”
“저만 믿고 한번 드셔보세요.”
아들은 할 수 없이 한 숟가락 떠서 먹어 보았어요.
“아니 이것은 우리 엄니가 준 바로 그 맛이오! 내가 논 한마지기를 줄 테니 일 년 동안 팥죽을 쑤어주면 안되겠소?”
아들은 기뻐 날뛰며 처자에게 애걸복걸 했지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논이 있다 해도 제가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논일도 조금씩 해주시면 팥죽을 쑤어 드릴게요.”
아들은 일은 하기 싫고 팥죽은 먹고 싶어서 한참 궁리했어요.
“결심했시오, 그렇게 하겄시오.”
아들은 가을걷이도 끝났으니 이제 논일도 없을 것 같아 일단 팥죽부터 먹고 보자 생각했지요. 생각대로 처자가 시키는 일은 정말 쉬웠어요.
“저기 물동이 좀 옮겨 주고 장작도 패주세요.”
일을 마친 뒤 아들은 처자가 쑤어준 팥죽을 맛나게 먹었어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라더니 정말 누워서 팥죽 먹기였지요.
하지만 이듬해 봄이 되자 처자는 다짐한 듯이 아들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했어요.
“이제 봄이 되었으니 논에 나가 땅을 갈아야겠어요.”
“난 못해요!”
“그럼, 팥죽은 없어요! 딱 한 고랑만 갈고 오세요.”
아들은 투덜거리며 마지못해 논으로 갔어요. 다음날 처자는 아들에게 또 일을 시켰어요.
“자, 오늘은 두 고랑이요.”
“아니, 왜 한 고랑 더 늘었소?”
“팥죽 쑤어주는 사람 맘이지요! 팥죽 먹고 싶으면 얼른 하세요.”
아들은 할 수 없이 논에 가서 두 고랑을 갈았어요. 하지만 다음은 세 고랑, 네 고랑. 논 갈기가 끝나자 물대기, 모심기, 김매기, 처자는 그렇게 계속해서 일을 조금씩 늘렸어요. 팥죽 맛에 푹 빠진 아들은 팥죽을 먹으려고 힘들어도 시키는 일을 다 했어요.
가을이 되자 논에 나간 아들은 깜짝 놀랐어요. 누런 황금벌판이 되어 출렁거리고 있는 논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내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건 너무나도 아름답고 황홀한 광경이었어요. 아들은 가슴이 뛰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하고 난 뒤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러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엄니... 엄니...”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어머니 생각에 기운이 없었어요. 그간 어머니께 잘못해 드린 게 후회스러웠어요.
“무슨 일 있어요? 어디 아프세요?”
아들은 어머니 생각에 죄송스럽다고 말했지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에요.”
처자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어요.
그 뒤로 아들은 처자가 시키지 않아도 논에 나가 일을 했어요. 하루하루 익어가는 벼를 보면 마음
이 뿌듯해지고 곧 수확할 생각에 기분도 좋았거든요.
하지만 어느덧 처자와 계약한 1년이 다 되어 논을 돌려주어야 할 날이 되었어요.
“벌써 1년이 되었구려.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 어머니가 평생 가꾸신 논을 팥죽과 바꾸었으나, 후회는 없시오, 덕분에 맛있는 팥죽도 먹고 게으른 귀신도 떼어내 버렸으니, 고맙소.”
“이제는 팥죽 없이도 살 수 있겠어요?”
“이미 그 맛에 길들여져 힘들겠으나 어쩌겠시오. 생각나면 한 번씩 팥죽 가지고 들리시면 좋구요.”
아들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운 듯 말했어요. 그동안 처자와 함께하며 처자를 좋아하기 시작했거든요.
“저도 사실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찾아와 부탁을 하셨어요.”
“엄니가요?”
“네, 혹시 팥죽을 먹고 싶은 아들이 팥죽을 찾거든 꼭 게으른 귀신을 떼어내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얼마나 간곡하게 부탁을 하시던지 거절 할 수가 없었어요.”
“아, 엄니. 돌아가실 때까지 제 걱정만 하셨네요, 그리고 왜 처자에게 부탁했는지도 알겠시오, 허허 엄니도 참.”
그러자 이번엔 아들과 처자의 두 볼이 똑같이 홍시처럼 빨갛게 물들었어요.
멀리서 소쩍새가 “팥죽”, “팥죽” 울며 날아갔어요.
osg6355 | 조회 7478 | 2018-10-3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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